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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 오래된 뒷담 아래시(詩)/시(詩) 2018. 1. 31. 21:57
오래된 뒷담 아래, 당신은
질경이도 겨우 자라는 돌투성이에
쪼그려 앉아 있기를 좋아했지요.
가는 봄날이 서운하다며
돌 고르고 흙 북돋우어 고추 모종하던 당신은
잦아지는 기침에 뒷담을 떠나고 말았지요.
당신 없는 사이에
비가 내리고 볕이 쨍하더니
시르죽은 고춧대 하나 생겼지요.
버팀대로 추슬러도 중심을 놓치고
볕도 물도 실답지 않은 듯 쪼그라져 가는 것을
차마 솎아 내지 못하고
제풀에 폭삭 쓰러지기만 바랐지요.
어느 해거름, 무심하게 돌밭에 앉았다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빈 것은
몸통을 제법 불린
잎사귀 몇 장을 달고도 꼿꼿한 고것이
눈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죠.
그저 우연한 일로 지날 수도 있지만
이 소식을 당신에게 전하게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겁니다.
기다림도 하루 일처럼 무덤덤해지면
이 오래된 뒷담 아래, 당신은
실한 열매를 똑 따게 되겠지요.시르죽다(동사) : 1. 기운을 차리지 못하다. 2. 기를 펴지 못하다.
(그림 : 신상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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