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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정희 - 먼 길
    시(詩)/문정희 2017. 12. 29. 09:54


                                                                                                                                             (낭송 : 황혜영)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 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 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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