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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나 - 멸치국시시(詩)/시(詩) 2017. 12. 25. 21:23
제사장 보러 엄마를 따라 서문시장에 갈 때 가끔 좌판에 쭈그려 나눠 먹던 멸치국시, 앙바틈한 양푼에다 어른 주먹만 한 국시사리를 담고, 둥둥 떠다니는 멸치대가리 멸치똥이 흐물흐물하도록 오래 우려낸 다싯물로 두어 번 토렴을 하고 숭덩숭덩 썬 대파 청초 홍초 땡초를 넣은 양념장 한 숟가락 푹 떠서 끼얹으면 그만이던, 불뚝 한 저분 입에 넣으면 날큰날큰 국숫발이 씹을 새 없이 씀푸덩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던 헐한 국시
괄게 다는 연탄화덕, 펄펄 김이 오르는 꺼무죽죽 그슨 양은솥, 반질반질 닳은 앉은뱅이 긴 나무의자,
똥짤막한 몸빼바지 땟국 쩐 무명전대앞치마를 두르고 군용담요 접어 깐 뺑끼 깡통 위에 앉아 두덕두덕 국시를 말아내던 아지매,
살뜰하게 몇 번이고 다싯물을 따라주면, 개안심더… 고마 됐어예… 터실터실 튼 손을 내두르면서도 후루룩후루룩 그 많은 국물을 다 켜던,
검정물 든 유엔잠바를 걸친 상이군인아재…
청청 빈 하늘 맨숭한 낮달이 백양푼이처럼 떴다 멸치국시 잘하는 집,
새로 생긴 국싯집이 시장통 바닥 같다 지날 때마다, 훅! 한입 들이키고 싶은 배릿한 멸치 다싯물과 짭조름한 간장 냄새가 고여 들고
어느새 어린 내가 엄마와 서문시장 비좁은 국싯집에 앉아,
마른 국시다발같이 잘 빗은 머리는 철사 머리핀으로 쪽을 지고 퉁퉁 분 국시가락처럼 엉덩이가 흘러넘치던,
손끝이 바람 끝 팔랑개비 같았던 무산아지매가 말아주는 뜨신 국시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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