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안도현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시(詩)/안도현 2017. 11. 26. 13:39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희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을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그림 : 장용길 화백)

    '시(詩) > 안도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도현 - 그 겨울밤  (0) 2017.12.23
    안도현 - 파꽃  (0) 2017.12.04
    안도현 - 모퉁이  (0) 2017.10.19
    안도현 - 염소의 저녁  (0) 2017.09.03
    안도현 - 원추리여관  (0) 2017.08.0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