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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원추리여관시(詩)/안도현 2017. 8. 9. 21:05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꽃대를 밀어 올렸나
원추리는 막바지에 이르러 후회했다
꽃대 위로 붉은 새가 날아와 꽁지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원추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어주고 다음 달부터 여관비를 인상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멀리서 온 것이나 키가 큰 것은 다 아슬아슬해서 슬픈 것이고
꽃밭에 널어놓은 담요들이 시들시들 마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어린 잠자리들의 휴게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도 되는지 면사무소에 문의해 볼까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에는 너무나 멀고 낡은 집이어서 관두기로 했다
원추리 꽃대 그늘이 흔들리다가 절반쯤 고개를 접은 터였다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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