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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마디 말의 등을 타고 나는 그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대 마음속 등불로 피어오른 복사꽃 향내를 맡고 싶습니다
이 한 마디 말의 귀를 타고 나는 그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즈믄 해를 강물로 흐르는 그대 마음의 여울물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묵은 상처에 새 살 돋고 메밀 싹에 첫 햇살 내리는
아침이면 굳게 잠긴 빗장을 열고 그대 빛나는 유리의 말들을 듣겠읍니다
그대 마을 열명길에 오리나무 꽃잎 피고
쏟아지는 햇빛의 분수들 지상의 건반을 흔들 때
지붕의 기와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창마다 커튼들은
깊이 여민 속치마를 벗을 것입니다
그대 마음의 얼음덩이 녹을 때까지 백리를 걸어도 안 아픈 말의 발을 딛고
상처나지 않은 몸으로 나는 그대에게 가고 싶습니다.
그대 마음속 깊이 묻힌 씨앗 트는 소리 들릴 때까지
마흔 개 가을의 낙과(落果) 소리를 더불고
맨살로 누워도 춥지 않은 그대의 잠의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열명길(명사) : 저승길(저승으로 가는 길)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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