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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 풀들의 사회생활시(詩)/이기철 2018. 6. 22. 10:06
풀들의 사회생활은 바람과 햇빛이다.
생성의 삶은 물색 옷을 자주 바꾼다.
떨켜는 꽃송이가 살던 자리
머묾이 안식일 수는 없다고
꽃들이 서둘러 봄을 벗고 여름으로 바꿔 입는다.
꽃은 별이 아닌데 별꽃이라 부르는 것은 나의 사치
온종일 꽃빛을 번역했으나 점염은 흰종이를 물들이지 않는다.
꽃들의 꿈이 아홉 겹이라도 한 겹 바람에 지나니
염려의 손으로 햇빛이 계절을 바느질한다.
오전은 속옷 속에 감춰주었던 종달새를
모본단 하늘로 날려 보내고
요절이어서 더 고혹인 꽃의 몸짓을
나는 못 배우고 나비가 배운다.
갈망과 유혹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
아름다움 제조법을 익히느라 늦은 나무들
슬픔을 배우기 전에 기쁨을 먼저 배운 풀들.
점염(漸染) : 차차 번져서 물듦
모본단(慕本緞) : 날실과 씨실이 배합되어 문양적으로 제직된 단(緞)의 일종으로, 두께는 양단보다 약간 얇다.
대개 단색으로 화려한 각색각문단(各色各紋緞)에 비하면 소박하다
요절(夭折) : 젊은 나이에 일찍 죽음
(그림 : 송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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