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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바닷가 작은 동네
화톳방앗집 아들이었다는 것이 자랑이다
세 파수째 궂으면서도
비는 오는 듯 멎는 듯 먼지잼으로나 선뵈고
젖은 수건 냄새로만 골목을 채운다
새참만 겨우내 이발소에는
일 없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앗간 달개방에서처럼
술추렴을 하고 라면도 끓이고 고스톱도 치고
구질구질한 고향 타령이 싫대서한 나달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애는
오늘도 또 전화뿐이라고
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풀이 죽었다
이제 남의 얘기가 돼버린 농사걱정에
짐즛 맥이 빠지다가도
고향까지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새 소문에
새삼 신바람들이 나는 중복
내후년엔 봉고차 빌려 타고 가자꾸나
고향 학교 운동장에서 한바탕 치자꾸나
그래서 술추렴이 길어지고
다시 먼지잼이 지나갈 때쯤이면
안개비 속에서인 듯 도새 속에서인 듯
통통통 화통방아 소리도 들리고
어허라 달구야 멀리서 달구질 소리도 들린다
(그림 : 남성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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