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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 중복
    시(詩)/신경림 2017. 1. 22. 17:14

     

     

    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바닷가 작은 동네

    화톳방앗집 아들이었다는 것이 자랑이다

    세 파수째 궂으면서도

    비는 오는 듯 멎는 듯 먼지잼으로나 선뵈고

    젖은 수건 냄새로만 골목을 채운다

     

    새참만 겨우내 이발소에는

    일 없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앗간 달개방에서처럼

    술추렴을 하고 라면도 끓이고 고스톱도 치고


    구질구질한 고향 타령이 싫대서

    한 나달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애는

    오늘도 또 전화뿐이라고

    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풀이 죽었다

     

    이제 남의 얘기가 돼버린 농사걱정에

    짐즛 맥이 빠지다가도

    고향까지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새 소문에

    새삼 신바람들이 나는 중복

     

    내후년엔 봉고차 빌려 타고 가자꾸나

    고향 학교 운동장에서 한바탕 치자꾸나

    그래서 술추렴이 길어지고

    다시 먼지잼이 지나갈 때쯤이면

    안개비 속에서인 듯 도새 속에서인 듯

    통통통 화통방아 소리도 들리고

    어허라 달구야 멀리서 달구질 소리도 들린다

    (그림 : 남성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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