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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대문 앞으로 긴 골목길이 지나가는
그런 집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불혹(不惑)에 병 얻어 부쩍 그 생각하네
내 생도 어느새 방 나와
마당에서 서성이는 세월 살고 있으니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기도
문 열고 나가기도 어정쩡한 시간
그냥 마당에 서서 기다리며
저녁을 위해 외등(外燈) 하나 밝히고 싶네
어두워지면 작은 세상 이루는 불빛 아래
사선(斜線) 그으며 내리는 사월의 비나
허공으로 펑펑 터지는 십이월의 눈 바라보며
풍경(風景)이 있는 고즈넉한 밤 맞이하고 싶네
삶의 주머니에 남아 바스락거리는 시간 만져보며
긴 골목길 뚜벅뚜벅 걸어 찾아오는
운명의 구둣발 소리가 찾아오는 그 밤을
나는 외등 아래 서서 담담하게 맞이하고 싶으니
(그림 :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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