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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 그리운 모닥불시(詩)/안상학 2016. 11. 28. 20:11
우리는 한때 모닥불이었다.
하나 둘씩 모여 불씨를 키우고
한무리 한떼 모여 불꽃으로 피어
하나 되어 어깨를 겯고 세상을 따뜻하게 불러모았다.
우리는 한때 모닥불이었다.
하나가 연기로 사라지면
둘이 불꽃 속에 뛰어들었고
둘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면
열이 불쏘시개롤 불꽃을 지폈다.
세월이 흐르고
희끗희끗 눈발이 닥치자
하나 둘씩 모닥불에서 걸어나갔다.
숯이 되다만 검은 얼굴로
물을 끼얹은 듯 물기 어린 눈빛으로
산산이 부서져 세상 밖으로 걸어갔다.
모여서는 무쇠도 불꽃이 되던 모닥불
세상을 따뜻하게 불러모으던 그리운 모닥불
불이 되지 못한 연기만 피어올라
이젠 날벌레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모닥불
그리운 모닥불
그 많은 불씨들 뿔뿔이 흩어져
어느 눈발 속을 걸어가고 있을까
다시 모닥불이 되는 따뜻한 꿈을 꾸고 있을까(그림 : 유진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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