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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미 - 겨울 잠행시(詩)/손순미 2016. 10. 21. 10:44
새소리 하나 보이지 않는 산길을 걷는다
세상의 고요가 여기에 다 모였을까 정적으로 꽉 찬 숲,
잡목들의 숨소리마저 새어나온다
길은 산꼭대기까지 걸려 있고
어린 나무들은 누군가 풀어놓은 햇살을 덮고 쿨쿨 늦잠을 자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은 저 햇살이다
산의 가슴팍에 열매처럼 매달려 사람들은 말이 없다추위에 옷섶을 여미다가 담배를 꺼낸다
입산금지라는 붉은 팻말이 섬뜩하다
이미 모든 것을 금지 당한, 산도 사람을 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은 희망도 휴식이 필요한 때
먼저 걸어간 나무들이 만세를 부른다곳곳에 잠복해 있던 산의 소리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환한 소리의 천지 이런 거대한 소리의 숲을 본 적이 없다
그 소리 능선을 타고 달린다
내 몸으로 다시 도져오는 삶의 핏줄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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