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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미 -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시(詩)/손순미 2016. 10. 15. 02:04
그 집은 담벼락 속에 들어가 있다
햇볕이 아무렇게나 흘러 다니는,
담쟁이덩굴이 꽃처럼 피어있는 담벼락을 열어보면
허물어진 집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담벼락 속으로 집이 도망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집의 내력은 보이지 않고
집이 서 있던 자리, 시퍼런 잡초와 썩어 나동그라진 기둥들
서로의 뼈를 만지며 세월을 굴린다
추억은 남아있을까
항아리를 들여다보면 구름이 누렇게 익어가고
세상은 집이 삭아가는 것을 방관한다
벽 속의 집은 봉긋하게 솟아난다
마당을 건너가는 풍금소리
몸을 찢어 잎을 내 보내는 나무들
투명하게 널려 있는 빨래들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친 두레박이 집 한채를 다 씻어내는,
(그림 : 노재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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