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관 - 흙 묻은 손시(詩)/이준관 2016. 10. 2. 11:17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버려진 땅을 일구어 사람들은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뜨개질을 하듯
심은 옥수수와 콩과 고추들.
꿀벌이 날아와 하늘로 꽁지를 치켜들고
대지의 꿀을 빨아들이고,
배고픈 새들은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 먹고 간다.아파트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제 가슴의 빈터를 메우듯
호미를 들고 와 흙을 북돋워주고 풀을 뽑는다.
옥수수 잎에 후드득 지는 빗방울은
사람들의 핏방울로 흐르고,
저녁에는 푸른 별 같은
콩이 열린다.흙 묻은 손으로
옥수수와 콩과 고추와 나누는
말없는 따뜻한 수화.
사람들의 손길 따라
흙은 순한 사람의 눈빛을 띤다.사람들은 흙 묻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흙에서 태어난 벌레들은
식구들의 옷을 기우고 박음질하는
재봉틀 소리로 운다.슬프고 외로울 때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겨울에는 시리고 외로운 무릎을 덮는
무릎덮개처럼
눈이 쌓인다.사람들이 일군 마음의 밭에.
(그림 : 임동식 화백)
'시(詩) > 이준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 거리에 가을비 오다 (0) 2017.06.13 이준관 - 봄 우체부 (0) 2017.03.30 이준관 - 꽃 보자기 (0) 2016.05.03 이준관 -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0) 2016.03.09 이준관 - 구부러진 길 (0) 201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