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관 -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시(詩)/이준관 2016. 3. 9. 10:12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놀이 아름답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촌락(村落)들은,
마지막 햇빛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러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그림 : 전운영 화백)
'시(詩) > 이준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 흙 묻은 손 (0) 2016.10.02 이준관 - 꽃 보자기 (0) 2016.05.03 이준관 - 구부러진 길 (0) 2015.07.07 이준관 - 천국의 계단 (0) 2015.05.26 이준관 - 저녁별 (0) 201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