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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 거리에 가을비 오다시(詩)/이준관 2017. 6. 13. 11:10
노란 우산 아래로 장화의 물방울을 튀기며
나는 거리로 나선다
비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 나는 들으마, 너는 말하라.
나는 외로운가 보다.
나는 누구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가 보다.
풋내기 시인처럼 앞뒤 운(韻)이 맞지 않은 네 말소리에
나는 열중한다.
얼간이처럼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나는 외로운가 보다.
길가에는 젖은 발들이 흐른다.
젖은 발들이 내 쓸쓸한 발등을 밟는다.
나뭇잎들이 비의 말을 따라 흉내를 낸다.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먹으며, 나뭇잎은 나보다 더 외로운가 보다.
항상 나에겐 낯설기만 한 비의 알파벳.
이국(異國) 처녀의 눈처럼 파란 비 오는 가을 풍경.
나는 누구를 방문할 일도 없는데
꽃집에 들러 꽃을 산다.
주정뱅이처럼 꽃을 보고 혼자 지껄이는 나는
형편없이 외로운가 보다.(그림 : 임재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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