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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인 - 장엄미사
    시(詩)/김명인 2016. 8. 13. 18:36

     

    홀로 바치는 노을은 왜 황홀한가
    울음이라면 절량(絶糧)의 울음만큼이나 사무치게
    불의 허기로 긋는 성호(聖號)!
    저녁거리 구하러 나간 아내가
    생시에 적어둔 비망록이 다 젖어버려
    어떤 경계도 정작 읽을 수가 없을 때

     

    나 한 척 배로
    속내 감춘 컨테이너 같은 하고많은 권태 적재하고서
    저 수평선을 넘나들었지만

     

    불이 시든 뒷자리에서 그리워하는 것은
    부질없다 노을이 쪼개고 간 항적(航跡)마저 지우고
    어제처럼 단단한 어둠으로
    밤의 널판자들 갈아 끼워야 하지

     

    그러면 어스름이 와서 내 해안선을 입질하리라.
    주둥이를 들이밀 때마다 조금씩
    마음의 항구가 떠밀리고 마침내 지워지면
    뼛속까지 부서져 파도로 떠돌리

     

    어떤 상처도 스스로 아물게 하는
    신유(神癒)가 있는가 딱지처럼
    천천히 시간의 블라인드 내리면 풍경과도 차단되어
    비로소 손끝으로도 만져지는 죽음의 속살

     

    해도 예전의 그 해가 아니라서
    오늘은 한 치쯤 더 짧게
    고동 소리가 수평선을 잡아당겨놓는다 

    (그림 : 이영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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