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명인 - 봄 날
    시(詩)/김명인 2016. 8. 13. 18:29

     

     

    어떤 기다림이 지쳐 무료가 되는지.
    가끔씩 개를 끌고 골목 끝으로 나가
    지나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이 시리도록 깜박이는 신호등 네 길거리지만
    나는 너의 행간이 아니라서
    비켜섰다가 돌아오는 길,
    겨우내 키를 움츠려 넘보지 못했던
    엄동의 담장 저쪽, 못 지킨 약속 하나 있어
    끝끝내 봄 밀려오는지,
    까치발로 그 추위 다 받들어
    가장 높은 가지 끝으로 목련 한 송이 피어난다.

    다시 며칠 사이에도 내내 할 일이 없어
    개를 끌고 골목 끝으로 나가면
    건답 위 봄 파종같이 뿌려진 인파들,
    무더기 밀린 약속 한꺼번에 치러내려는 듯
    만개의 목련, 길바닥까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세상은 참 바쁘다, 어느 사이 나는
    얼음의 문신 홀로 몸속에 새겨 넣었는지.
    해동이 안 되는 기다림과 권태 속으로
    느릿느릿 시선이 가 닿는 저 건너 공터 어디쯤
    겨우내 짓고 있었던 마음의 폐허,
    그 얼음집 다 세우기도 전에
    어느새 끈을 끊고 개가 사라져버린 골목 입구를
    혼자서, 혼자서 우두커니 지켜본다.

    (그림 : 정세화 화백)

    '시(詩) > 김명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명인 - 저녁 눈  (0) 2016.08.13
    김명인 - 17시 반의 기적  (0) 2016.08.13
    김명인 - 새벽까지  (0) 2016.08.13
    김명인 - 그리운 몽유(夢遊) 2  (0) 2016.08.13
    김명인 - 그리운 몽유(夢遊) 1  (0) 2016.08.1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