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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새벽까지시(詩)/김명인 2016. 8. 13. 17:58
한 장씩 더듬으며 너를 떠올리는 것은
내가 이 풍경을 대충 읽어버린 까닭이다.
어두워지더라도 저녁 가까이
창문을 달아두면
검은 새들이 날아와 시커멓게 강심(江心)을 끌고 간다.
마음의 오랜 퇴적으로 이제 나는
이 지층이 그다지 초라하지 않다.
그 창 가까이 서 있노라면
오늘은 더 빨리 시간의 전초(前硝)가 무너지는지,
골짜기를 타고
어느새 핏빛 파발이 번져오른다.
곧 어둠의 주인이 찾아들겠지만
내가 왜 옹색하게 여기
몇 가을째 세들어 사는지,
헤아리지 않아서 이미 잊어버렸다!
어떤 저녁에는 병색 완연한 새 한 마리가
내 사는 일 기웃거리다 돌아가면
나도 아주 하릴없어져 어스름 속에
쭈그리고 앉아 불붙는 아궁일
물끄러미 들여다보거나 정 심심해지면
땅거미 가로질러
하구 저쪽 갯벌 끝 끝까지 걸어가곤 한다.
거기에는 소금을 모두 비운 한 채
소금막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다.
시간의 무딘 칼날에 베여도 이제 더는
아프지 않도록
이 밤의 책들 다 사르리라, 나는
불꽃을 훨씬 뛰어넘는 새벽의 사람이 되어서!(그림 : 반승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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