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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명년의 향토사시(詩)/하종오 2016. 7. 25. 10:57
내가 심은 사과나무는 죽고
이웃이 심은 사과나무는 살아서
풋사과를 주렁주렁 달았다
나는 심어만 두고 멀리 나돌았는데
이웃은 때맞춰 전정을 잘 했는가,
나는 우듬지를 구경이나 하며
병충해 든 잎사귀를 시름겨워했는데
이웃은 사과나무에게
사과를 많이 안 맺으면 미안해하도록
뿌리에 거름을 많이 주었는가,
내가 며칠 오명가명 관찰하니
이웃은 틈틈이 사과나무에게 다가가
결실하기 힘 드는 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나무는 틈틈이 이웃사내를 쳐다보며
수확하기 힘 드는 줄 안다는 듯이 가지를 흔들었다
명년에 다시 한 그루 심고 잘 사귀어야겠다
나는 죽은 사과나무를 베어냈다
(그림 : 이상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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