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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소풍 가잔다시(詩)/하종오 2014. 8. 18. 23:42
자식들 도시락 싸다 남은 김밥
몇줄 썰던 아내가 갑자기 소풍 가잔다
소풍은 걸으면서 바람과 잘 논다는 것
반드시 도시락에 김밥 싸가지고 가서
바람에게도 한입 먹여줘야 하는 것
아내가 평생 안치고 푼 쌀밥과
씻은 밥그릇 얼마나 되는가
아이 잘 배던 아내는 가난했던 젊은 날
한입이라도 덜기 위해 아이 많이 지웠는데
이제 몸에 통풍하는 나이 되어 맛난 것 만들어놓고 보니
낯선 바람 찾아서라도 한입 잘 먹여주고 싶은가 보다
맑은 봄날 시골 가 들길 걷다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도시락 풀어서
김밥 한 개 멀리 바람에게 고수레하고
또 한 개 던지려다 말고 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먹는 것이 전부이다시피 한 삼백육십오일 일생, 우리가
저마다 먹으러 이전의 세상에서 와 만났으나
서로 먹이지 못하면 이후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자식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소풍 끝내려는데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그림 : 김준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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