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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지팡이였다가 몽둥이였다가시(詩)/하종오 2014. 8. 18. 23:24
병든 대추나무 베어내다가
나뭇가지 하나 골라내었다
내가 병들어 비틀거리기 전에
지팡이를 만들어놓고 싶었다
오래 낡은 집에서 같이 오래 산 대추나무는
더오래 늙을 나를 미리 알고 지팡이 삼게 하려고
오직 한 나뭇가지만 곧고 굵게 뻗으려다가
대추알을 맺지 못하였던 걸까
다리에 나뭇가지 재어본 뒤
손으로 잡기에 맞춤하게 잘랐는데
높이가 더 낮아져서 짚을 수 없었다
왜 오차가 생겼는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처럼 늘 생의 오류를 저지르고도 모르던
나를 때릴 몽둥이로 만들면 되지 싶었다
오래 낡은 집에서 오래 본 대추나무는
더오래 잘못할 나를 일찌감치 꾸짖고 싶어서
오직 한 나뭇가지로만 남아 몽둥이 되어주려고
잎마저 피우지 못하였던 걸까
지금 단 한 나뭇가지만 남겨두고
대추나무는 그 많은 가지들 다 버리었다
나를 가르치려고 선수쳐서 환골탈태한 대추나무
나는 한 나뭇가지를 세우고 가마히 이마 대었다(그림 : 김원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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