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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아비는 입으로 농사짓고 아들놈은 손으로 농사짓다시(詩)/하종오 2014. 8. 18. 23:20
장에 가는 차비 아낄 요량으로
남의 차 얻어 탔다가 도랑에 처박히어
부러진 손모가지 기브스한 아비는
장터에서 개인택시 하는 아들놈 불러들였다
아비는 웃둑으로 가서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차는 똑바로 몰면서 경운기는 삐뚜름하게 모냐?
길 가는 운전대 따로 논 가는 운전대 따로 있냐?
아비는 아랫둑으로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길바닥에선 물 피해 길 빨리 달려도 되지만
논바닥에선 물 흘러가게 길 내며 천천히 가야 돼.
아들놈 차값 본전 뽑으려면 경기 잘 타야 하는데
꽃놀이 패 몰려올 땐 불러서 모판 찌게 하고
물놀이 패 몰려올 땐 불려서 농약 치게 하고
단풍놀이 패 몰려들 땐 불러서 벼 베게 했다
아비는 짚단 묶으며 사근사근 말했다
벼가 다 익으니 내 손모가지도 다 붙었다야.
네 근력이 아주 세니 땅심도 더 세졌다야.
아비는 나락 포대 세며 사근사근 말했다
길바닥에서 하는 손님 장사가 재밌겠냐?
논바닥에서 하는 곡식 장사가 재밌겠냐?
논일하는 동안 영업 못한 아들놈은 일당 계산해
든손에 쌀 찧어 택시로 장에 실어 날랐다
결국 반타작밖에 못한 셈이지만
아비는 빈들 바라보고 삥긋 웃었다(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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