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오 - 달빛 그림자시(詩)/하종오 2014. 8. 18. 23:32
시골에 와서 밤에 자드락길 걷네나무는 낮에 생긴 제 그림자보다 밤에 생긴 제 그림자에게 사로잡히는지
달빛 가만히 받고 서 있네
오늘밤에는 달이 쉬는 숨소릴 듣고 싶지만 내 발소리만 들리네꽃향기 나는 나무에게 다가오니 한 길은 올라가고 한 길은 내려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갈림길에 닿네
달은 초하루에서 차오르고 있는지 보름에서 이지러지고 있는지
내가 쳐다봐도 갈 곳 비추어주진 않네
오르막길로 간들 산이 제 그림자를 앞세우고 내려오고내리막길로 간들 강이 제 그림자 끌고 올라와서
달이 내는 숨소릴 듣게 해줄 수 없을 테니
갈림길에서 그만 내가 심호흡해버리고 마네
맨 처음 잡목 베어내고 기슭 파내어 자드락길 만든 이는 봄밤에 한번쯤 걸어보면서훗날 한 인간이 와서 이럴 거라는 걸 알았을라나 몰랐을라나
꽃향기 내며 서 있는 나무가 제 그림자 조금씩 옮기네
비로소 나도 보네
내 그림자에 사로잡혀서 달빛 받으며 자드락길 되돌아가려는 나를
자드락길[명사] :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
'시(詩) > 하종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종오 - 소풍 가잔다 (0) 2014.08.18 하종오 - 밥 먹자 (0) 2014.08.18 하종오 - 지팡이였다가 몽둥이였다가 (0) 2014.08.18 하종오 - 갯벌에서 반나절 (0) 2014.08.18 하종오 - 아비는 입으로 농사짓고 아들놈은 손으로 농사짓다 (0) 201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