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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 콩밭 짓거리
    시(詩)/안도현 2016. 5. 31. 22:28

     

     

     

    귀갓길에 좌판을 펼친 노파에게 물었다

    이 열무 한 단에 얼마예요?

    그런데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대뜸 콩밭 짓거리라고, 한다

     

    사내가 열무 값을 묻는 게 무슨 짓거리라는 말인가?

    (불알 두 쪽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아니면 내가 콩밭에서 한 짓거리를 다 봤다는 뜻일까?

    (콩밭에 쭈그려 앉아 똥 눈 적 있으나 이미 삼십년도 더 된 옛일!)

    그도 저도 아니라면 이 세상에 와서 저지른

    나의 모든 못된 짓거리를 호통 치는 소리일까?

    (그렇다면 이 노파는 나를 꾸짖으러 내려온 지장보살?)

    도대체 콩밭 짓거리라니,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앞에

    열무를 숭숭 썰어 밥 비벼먹고 싶은 저녁이 갑자기 난감해졌다

    이 콩밭 짓거리 겁나게 좋은 거 알지? 노파는

    벌레가 송송 뚫어놓은 열무 잎사귀를 펼쳐 보였다

    나는 농약을 치지 않은 것이라 여기고 서둘러 값을 치렀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콩밭 짓거리

    콩밭 고랑 사이사이에 씨를 뿌린 열무 따위의 푸성귀를

    전라도에서는 여름철에 김칫거리로 곧잘 쓴다는 것을

    그것을 콩밭 짓거리라고 부른다는 것을

     

    콩밭의 햇볕, 콩밭의 그늘

    반반씩 골고루 받아먹고 자란 콩밭 짓거리

    그 줄기를 씹으면 사각, 연둣빛 단물이 입에 고여 찰방거리는

    벌레도 사람도 반반씩 사이좋게 나눠먹는 콩밭 짓거리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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