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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달을 따주겠다고 했겠지요
달의 테두리를 오려 술잔을 만들고
자전거 바퀴를 만들고
달의 속을 파내 복숭아 통조림을 만들어
먹여주겠노라 했겠지요
오래전 아버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간 밤이 있었지요
사춘기의 풀벌레가 몹시 삑걱거리며 울던 그 밤,
그런데 누군가 달의 이마에다 천근이나 되는
못을 이미 박아놓았던 거에요
그 못에다 후줄근한 작업복 바지를 걸어놓은 것은 달빛이었고요
세월이 가도 늙지 못한 아버지는
포충망으로 밤마다 쓰라리게 우는
별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끌어모았을 거예요
아버지 그림자가
달을 가린 줄도 모르고 어머니,
그리하여 평생 캄캄한
이슬의 눈을 뜨고 살았겠지요
(그림 : 조선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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