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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뿡뿡,하고 운다,우는 것은 기차인데
울음을 멀리까지 번지게 하는 것은 철길이다,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궤짝과 포탄을 실어나른 적 있다
허나,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
곡성이며 여수 따위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배반하지 못했으므로
단 한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
철길이란,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기차를 구하지 못했다
철길을 끌고 다니는 동안 서글픈 적재량만 늘었을 뿐
그리하여 끌고 다닌 모든 길이 기차의 감옥이었다고 독방이었다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저도 녹슬었다고
기차는 검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기어이
철길에 아랫배를 바짝 대고 녹물을 울컥,쏟아낸다
삼례역(參禮驛)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3번지에 위치한 전라선의 철도역이다.
삼례는 세번 예를 갖춘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때 회안대군 이방간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아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이방간을 향해 세번 예를 갖추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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