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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붉은 눈시(詩)/안도현 2015. 12. 12. 20:55
(낭송 : 정숙지)
부엌, 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곧잘 슬퍼져요
부엌은 늙거나 사라져버렸으니까요
덩달아 부엌, 이라는 말도 떠나가겠죠?
안 그래도 외할머니는 벌써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더는 고등어를 굽지 않아요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던 아궁이 생각나요?
아아, 나는 어릴 때 아궁이 앞에서 불꽃이 말을 타고 달린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말도 안돼, 하면서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말이 우는 소리로 밥이 익는다고 생각했어요
알아요? 아궁이는 어두워지면 부엌의 이글거리는 눈이 되어주었지요
참 크고 붉은 눈이었어요
이제 아무도 자신의 붉은 눈을 태우지 않아요
숯불 위에 말이 쓰러져요
나는 세상이 슬퍼도 분노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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