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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시(詩)/안도현 2016. 5. 17. 13:11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 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그림 : 김대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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