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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척산 어귀시(詩)/김명인 2016. 5. 24. 18:10
우리가 척산 어귀쯤에서 부두로 돌아오는
저녁 배 바라볼 때
수평에 잠방거리는 노을, 하필이면
빈 배에 실린 만선 홍역이
내 눈시울 가으로도 하역되는지,
그러고 보니 젊은 날 항원(抗原) 이미 몸 속에서 무너져
사랑을 두고 어떤 되풀이도 나 익숙지 못하네
다만 갈매기 두어 줄금의 끼룩거림
환한 수정 구슬로 꿰여
비로소 나지막한 통통배 소리 끄을려 온다
한 줌을 움켜쥐랴, 한 아름 안아보랴
틈새로 다 새어버리는 다짐, 부여잡은
잔술 하나만큼 출렁이게 가두면
모든 근원이 지금 한 주점임을,
왜 하루치의 차일 어김없이 내리느냐
젖은 홍포 벗겨내고 바다 맨살을 감싸는
지상의 이불 한 채,
어느새 아득한 수평 끝까지 검게 물들이고 있다척산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리(里)이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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