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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 얼음눈동자시(詩)/김수우 2016. 5. 1. 14:46
여덟 살 다팔머리 맏딸은
쭈그렁냄비를 들고 봉래동 시장통에 서 있었다아부지 임금 대신 받아온 동태가마니,
새 운동화를 약속했던 엄마는 그 북태평양 살점들을 팔기로 한 것,
쏟아진 얼음눈동자들, 시장바닥을 훤히 아는 듯 두릿거렸다
처음 생선장수가 된 엄마,
'더하기빼기 할 줄 알제!' 갈기 푸른 목청이 쥐여준 냄비를 안고더하기빼기가 막막한 딸은 하늘만 바라보았다
얼음눈동자들이 봄구름을 넘고 있었다 물갈퀴가 된 엄마손도,
오 원짜리 지폐로 퍼덕이는 바다도,
세 동생이 끌던 슬리퍼도, 귀퉁이 깨진 두레밥상도,
천장을 달리던 쥐들까지 얼음눈동자로 둥둥 떠가고 있었다아부지가 끌고온 바다가 앞으로 억 년은 걸어야 할 큰 하늘임을 몰랐던 그때,
운동화 한 켤레가 비싸다는 것을 알았고,
정말 미안했다 온 천지에 미안했다
종이돈 아가미처럼 담기던 손냄비가 그 모양 그대로 제 가슴이 되어버린 지금,얼음눈동자로 본다
두릿두릿, 모서리마다 투명한 저 얼음눈동자들(그림 : 손명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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