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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둘 친정아버지, 도시락을 들고 간다
북태평양 까맣게 끌고가던 명태떼가 출렁인다
평생 넘나든 파도는 이제
아파트 경비실에서 높다
갑판에서 속옷을 빨며 철썩이던 아버지
사람도 열쇠도 엘리베이터도 밀물이고 썰물이다
창문도 우편함도 쓰레기도 촘촘한 그물눈이다
아무리 크게 말해도 아무리 작게 말해도
삶은 언제나 한 척의 원양어선일 뿐
허리 굽은 일상이 먼 수평선으로 흐르다
한번씩 길게 뒤척이는데
종일 고깃길 따라다니던 아버지
한밤중이면 등대가 된다
깜박깜박 길을 비춘다
내일 밀려날 지 모르는 일자리는
모든 대양이 그랬듯 하루하루 비리고 푸르다
지느러미손와 지느러미발은 아직도 항해 중
경비실은 넓다
경비실은 깊다
아버지의 빈 도시락 속
다랑어 잡던 적도의 물마루, 우우우 일어선다(그림 : 배기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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