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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 - 펌프의 꿈시(詩)/시(詩) 2016. 4. 24. 17:30
이게 뭐지,
화석처럼 굳어있는 게 신기했던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낡은 펌프 손잡이를 움켜쥔다
한때는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 펌프질을 했으리라
아낙네들은 와서 누구 사내는
펌프질을 잘한다네, 못한다네 하고
한참을 히히덕거리다 가고
온종일 동네 어귀에서 놀다 온 아이들은
지들끼리 등목을 하며 으으으 으으으,
새까만 몸을 마구 비틀었으리라
그걸 본 계집애들은 또 까르르르 웃다가
발그레한 얼굴로 돌아갔으리라
저게 죽어서 고철이 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쓸쓸해진다
나라도 마중물이 되어 저 목울대를 타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손을 내밀고 살을 섞고 싶다
그때면 낡은 펌프도
울컥울컥 울음을 토해내다가 말하리라
등목 한번 할래?
(그림 : 노애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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