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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재일 - 우럭
    시(詩)/시(詩) 2016. 4. 21. 17:14

     

     

    거센 비바람에 한순간 몸의 비늘을 빼앗기고 맨살마저 갈라터진

    나무 물고기 한 마리가 허공의 평상에서 왜 헤엄치게 되었을까.

    추녀 끝에 수평으로 매달려 온종일 직각의 기다림에 야위어간다.

    세상에 나가 짠물만 먹고 돌아온 털보가 엊그제 국숫집을 차렸다.

    시간 나면 국수 한 그릇 먹게 와라, 회화나무 골목에 터를 잡았다.

    요즘 색이 한창인걸, 세상에 노랗게 꽃물이 번졌어, 응, 웃었다.

     

    찬물에 국수를 막 건져내다 양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가시관을 눌러 쓴 물고기 한 마리 김 서린 주방에 언뜻 보인다.

    지느러미가 심하게 흔들리며 방파제 아래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얼룩무늬 얼굴에 깊은 주름살, 입안의 아가미가 새까맣게 탔다.

    국수를 묶었던 붉은 노끈 몇 가닥 몸에서 풀려 서로 엉켜 있다.

    어두운 벽면엔 물때가 지난 줄도 모르고 주방도구들 매달려 있다.

     

    우럭은 빨랫줄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뼈째 꾸들꾸들 저물어간다.

    세상은 그가 품었던 소금이며 모래며 불꽃까지도 말리는 중이다

    (그림 : 안호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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