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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 들꽃을 보며시(詩)/김완하 2016. 4. 15. 00:59
가을 볕 속에서 색을 바꾸고
힘없이 지는 저 나뭇잎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들꽃 외에는 마음 주지 않기로 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던 그대 말씀
한여름 타오르던 태양의 약속도
식어 땅에 가슴 드리우기도 전
바람 한 줄기에 뒤척이며
그 약속의 말 부서져
후루루 떨어지는데
그대와 내가 걷던 풀밭
숨었던 들길 드러나 자꾸 휘어지고
저녁 노을에 그림자 터무니없이 길어질 때
이 세상 낯빛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기로 했다
풀 섶에 묻혀 제 낮은 키도
스스로 더 낮추는 꽃
풀잎들 모조리 쓰러져 누운 뒤에도
엷은 미소 머금으며
꽃잎 말라 으스러질 때까지
변치 않는 저 들꽃
가을 볕 속에서 색깔을 바꾸며
힘없이 뒹구는 단풍 보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들꽃 외에는 마음 두지 않기로 했다(그림 : 김순자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