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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 순천 아랫장시(詩)/허형만 2016. 1. 16. 09:03
장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온 집안이 잔치 집처럼 들썩거렸다
어머니는 열무를 보기 좋게 가지런히 다듬고
나는 밭에서 이슬 젖은 깻잎을 뜯느라
손톱 밑이 새까만 손으로 깻잎을 간추려 다발로 묶었다
할머니는 채소들이 수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리거나
젖은 무명베를 광주리에 담긴 채소들 위에 덮었다
아랫장까지는 십리 길,
당숙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수지 방죽을 지나
장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광주리를 이고
나는 리어카에 고추며 열무를 싣고
희희낙락, 아직은 이슬 어린 햇살을 밟으며 장으로 갔다
장날이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말끔하게 차려입은 밤재골 이모랑 이모부를 만나고
해룡면사무소 주사인 외삼촌과 외숙모도 만났다
깻잎이며 열무며 고추까지 다 팔고 난 파장 무렵이면
우리는 손가락이 예쁜 아주머니의 국밥집 긴 의자에 앉아
눈먼 외할머니 안부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낮부터 한 잔 하셨는지 따가운 햇살에 더 불콰한
낯모르는 어르신에게 외삼촌은 나를 자랑하며 인사시키기도 했다
제대하고 농사짓던 두 해 동안
그렇게 아랫장은 나를 먹여 키웠다
순천 아랫장 : 전라남도 순천시 풍덕동 동천(東川)변에서 열리는 5일장이다.
전국의 5일장 중 최대 규모로, 1일 이용객은 2만여 명이 넘고 부지면적은 약 3만 3,000㎡에 이른다.
순천은 물론 구례·곡성·보성·화순·고흥·광양·여수 등 전남 동부지역과 경남 하동·진주 지역의 상인들과 주민들도 찾아오는 장으로, ‘남부5일장’이라고도 부른다.
장날은 2·7·12·17·22·27일이다.
순천만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청결미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과 순천만과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각종 공산품과 약초·화초 등이 거래된다.시장 남쪽 보건소 부근에는 곡물창고와 수산시장 건물 등 대형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장터 곳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남도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림 : 조영철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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