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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양 - 보리방귀
    시(詩)/정양 2015. 12. 5. 11:20

     

    보리밥 먹는 여름철에는
    방귀 많이 뀌는 게 큰 자랑이다
    상학이 방귀는 동네뿐만 아니라
    5학년 1반만 아니라 전교생이 다 알아준다
    상학이가 방귀 뀌는 걸 보고
    담임선생님도 놀란 얼굴을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며 몇 번이나
    올림픽 금메달 깜이라고 했다

     

    뭘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 때나
    상학이만 보면 방귀 좀 뀌어보라고
    무턱대고 졸라대지만 사정 아는 아이들은
    상학이 낯빛이 치잣물에 적신 것처럼
    노랗게 질릴 때를 기다렸다

     

    어쩌다 한 번씩 은행나무 밑에서
    상학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엉덩이를 깐다
    한꺼번에 힘을 모아 큰 소리로 터뜨리는
    그런 예사 방귀가 아니다
    두 손으로 오르락내리락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엉덩이를 뒤로 조금 내밀고 무릎은
    엉거주춤 오므리고

     

    불알이 달랑거리거나 말거나
    엉덩이와 오금쟁이와 뱃살과 똥구멍으로
    골고루 힘을 나누어 자디잘게 움짓거리면
    품 넓은 은행나무 그늘 속에는
    염소똥 같은 자디잔 방귀총 소리가
    번번이 백 방도 넘게 이어지는 것이다
    일부러 꽁보리밥 배 터지게 먹고
    곁에서 상학이를 흉내내던 복철이는
    스무 방도 못 넘기고 철프덕
    생똥을 싸버린 적도 있다

     

    은행나무 잎들도 방귀총 소리에 숨을 죽인다
    야든일곱 야든야달 야든아홉
    방귀총 소리에 맞추어
    숨죽여 수를 세는 아이들 목소리가
    백 방을 넘기면서 점점 커지다가
    방귀총 소리 놓칠까봐 다시 숨을 꺾는다
    조용히 좀 하라고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입술께를 두드리면서
    상학이 엉덩이 근처에 바짝
    귀를 들이미는 아이들도 있다

     

    백아홉, 백열, 백열하나, 백열둘

     

    상학이가 무릎 펴고 허리 펴고 바지춤을 올린다
    우와아 신기록이다 백열둘 백열둘 백열둘
    아이들 함성에 은행나무 잎들이 화들짝 놀란다
    샛노랗던 상학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점점 커지는 아이들 목소리가 합창으로 바뀐다

     

    상학이 똥은 맴생이똥 상학이 방구는 보리방구
    상학이 똥은 퇴깽이똥 백 방도 넘는 보리방구
    상학이 방구는 줄방구 올림픽 금메달 깜 줄방구

    (그림 : 김승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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