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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한 마리 멧새시(詩)/문태준 2015. 9. 17. 21:37
소복하게 내린 첫눈 위에
찍어놓은
한 마리 멧새 발자국
첫잎 같다
발자국이 흔들린 것 보니
그자리서 깔깔 웃다 가셨다
뒤란이 궁금해 그곳까지 다녀가셨다가늘은 발뒤꿈치를 들어 찍은
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 귀에 부었다
맑은 수액 같다
귀에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졸졸 우신다
좁쌀 같은 소리들
귀가 시원하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내 발이 아직 따뜻하다멧새 한 마리
시골집 울에 내려와
가늘은 발목을 얹어 앉아
붉은 맨발로
마른 목욕을 즐기신다
간밤에 다녀간 그분 같은데
밤새 시골집을 다 돌아보고선
능청을 떨고
빈 마루를 들여다보고 계신다(그림 : 김영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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