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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봉 - 바닷가 찻집
    시(詩)/시(詩) 2015. 7. 1. 01:19

     


    누구나 바다 하나씩 가지고 산다.
    가까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귀머거리) 찻집에 앉아
    옛사랑을 그리며
    반쯤 식어버린 차를 마신다.

    파도는 유리창 너머에서 뒤척거리고
    찻집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오래된 시집을 읽고 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찻집보다는 선술집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주인은 시집을 덮고,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확트인 유리창 곁에
    그 사내들의 자리를 권하고
    다시 시집을 펼쳐든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들어간다.
    주인은 주문을 받지도 않고
    사내들은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떠나가고
    주인만 홀로 빈 찻집에 남게 될 것이다.

    온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지쳐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그 바닷가 찻집에 파도처럼 왔다가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

    주인은 마음으로 시집을 읽고
    사내들은 말없이 빈 바다를 마신다.

     
    펄펄 끓어오르던 온기마저 서서히 식어갈 때
    옛사랑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내 손에 전해져 오는 냉기와
    콧속으로 파고드는 짭짤한 바다의 냄새,
    내 마음 역시 그들과 함께
    빈 바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바닷가 빈 언덕에서 찻집을 하는
    주인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껴안을 수 없는 사랑 하나씩 안고 산다는 것을

    (그림 : 서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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