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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표 - 처서 무렵 노을은시(詩)/시(詩) 2015. 6. 23. 22:13
처서 무렵의 노을은 산비탈 밭머리
고개 꺾인 수수 모가지 사이로 든다
까치발로 서서 발등 부비며 서걱이는
수수 잎사귀 틈으로 온다
빈 도시락을 어깨에 맨 채 달그락거리며
신작로를 따라오던 유년의 긴 그림자
처서 무렵에는 일등만 맡아 하는 반장처럼 당당하던 플라타너스도
동네 우물가 풋감 떨어지는 소리에 오소소 몸을 떨고,산다는 건 아궁이의 다 닳은 부지깽이처럼
그저 참고 또 견디는 것
사람들은 야위어가는 하구의 물그림자에
지난 여름의 생채기를 말없이 실어 보낸다처서 무렵의 노을은 들 일 마친 늙은 아버지의
삼베 잠뱅이를 지나
밥물 넘는 저녁 연기 사이로 고개 떨구며 온다(그림 : 장정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