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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그림 : 최장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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