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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 겨울 섬 노인당시(詩)/시(詩) 2015. 6. 22. 19:52
바람 불고 바닷 일 없는 날
집집마다 면세유 펑펑 땐 따순 방에 젊은이들 술판을 벌이고
비싼 기름 값, 보일러도 끄고 잔 노인들
밤새 미지근한 전기 장판에 찌부러진 몸 풀러 노인당을 찾는다.
골고루 뜨끈한 노인당, 삶은 돼지 몇 점에 낮술이 한 순배 돌면
선창몰 할머니 말씀이 걸어진다.
"좇 달린 놈들은 평생 철이 없어. 씨발 것들, 젊으나 늙으나 함부로 산 당께."
열에 아홉은 영감이 먼저 세상 뜬지 오래다.
벌써 10년, 20년, 청상도 몇 몇.
"여자들은 시집가면 철 드는 디 사내놈들은 철들면 죽어뿌러."
선창몰 할머니 말씀 사이로 응달짝 할머니 끼어든다.
"그러게 말이요잉
우리 영감이 그렇게 철이 없어서, 고생도 고생도 징하게 시키쌓더니
이노므 영감이 늘그막에 이제 좀 철이 드나 싶으니 덜컥 죽어버립디다. 글쎄."
"우리 영감도 그럽디다."
"참말 그럽디다. 사내놈들은 철들면 죽는단 말이 딱 맞어라우."
모진 세월 구구절절 말은 안 해도 노인당 할머니들 맘이 다 같다.
원수 같은 영감탱이들.
사재 넋이 같은 영감탱구들.
겨울 노인당, 영감들 먼저 보내고 할머니들 비로소 즐겁다(그림 : 안호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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