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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주왕산에서시(詩)/김사인 2015. 6. 20. 14:50
가을볕
이 엄숙한 투명 앞에 서면
썼던 모자도 다시 벗어야 할 것 같다
곱게 늙은 나뭇잎들 소리내며 구르고
아직 목숨 붙은 것들 맑게 서로 몸 부비는 소리
아무도 남은 길 더는 가지 않고
온 길을 되돌아보며
까칠한 입술에 한 개피씩 담배를 빼문다
어떤 얼굴로 저 가을볕 속에 서면
사람은 비로소 잘 익은 게 되리
바지랑대도 닿지 않는 아슬한 꼭대기
혼자 남아 지키는 감처럼
닥쳐올 그 어느 시간의 예감을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이 맑음 속에 어떤 자세로 앉아야 하리
(그림 : 이금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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