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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밤길
수풀 헤치며 듣던
어질머리 풀냄새 벌레소리
발목에 와 서걱이던 이슬방울 그리워요
우리는 두 마리 철없는 노루새끼처럼
몸 달아, 하아 몸은 달아
비에 씻긴 산길만 헤저어 다니고요
단숨만 들여마시고요
안 그런 척 팔만 한번씩 닿아보고요
안 그런 척 몸 가까이 냄새만 설핏 맡아보고요
캄캄 어둠 속에 올려 묶은 머리채 아래로
그대 목덜미 맨살은 투명하게 빛났어요
생채기투성이 내 손도 아름다웠지요
고개 넘고 넘어
그대네 동네 뒷산길
애가 타 기다리던 그대 오빠는 눈 부라렸지만
우리는 숫기 없이 꿈 덜 깬 두 산짐승
손도 한번 못 잡아본걸요
되짚어오는 길엔
고래고래 소리질러 노래만 불렀던걸요(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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