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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근 - 희미한 것들에 대하여시(詩)/시(詩) 2015. 6. 15. 23:04
거울의 뒷면은 깜깜한 어둠이다
쨍그랑하고 깨어지는 것은 어둠 때문이다
어릴 때, 별을 보면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 옆에 희미한 별빛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면 사라지는,
그러나 다시 빛나는 눈 밖의 빛
내 사랑은 대체로 희미하였다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누군가가 있었을 뿐
너를 눈앞에 두고도 나는
눈 밖에서 부지런히 기억을 만들었다
선명한 것들은 나의 적이었다
선명한 것들은 끊임없이 나를 지웠고
나는 줄기차게 선명한 것들을 지웠다
희미한 사람들과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웃고 울었다
희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희미해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나, 이제 희미해졌다
내가 그러했듯 지금쯤 너의 사랑도 희미할 것이므로
너의 눈 밖에서 나는 희미하게 빛날 것이다
똑바로 쳐다보면 사라지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저, 눈 밖의 빛
(그림 : 이종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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