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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 철원협곡시(詩)/시(詩) 2015. 6. 14. 19:04
새벽하늘 위로 밀려가는 물결무늬,
숱 빠진 철원평야를 쇠러기떼가 쓸고 간다
낟가리 걷어낸 밑둥에 새순이 번져 있다
비스듬히 돌아누운 단호박을 슬쩍 건드리니
웃는 뜻 찡그린 와불처럼 한 뼘 더 내려앉는다
호박젖줄에 매달린 벌레들이 분주해진다
번지는 햇살에 눈 어둑한 돌단풍이
수직절벽 여울에 발 빠뜨리다 오그라드는,
철원협곡에 나 앉은 돌탑무더기에는
물소리 새긴 귀 한 쌍 들어있다
옮겨 앉으라고 보채던
바람떼가 산을 넘는다
안개도 달빛도 어쩌지 못하고
골 패인 협곡 밑에 앉았다 자리 뜬다
물소리에 귀가 트인 돌멩이들이
탑신에 모여 산다
넘치는 붉은 햇살 끌어 덮는 들마을
찰박찰박 울리는 협곡 물소리에 깨어
농익은 무를 수욱 뽑아올리는 들마을 노인,
마른 억새가 쓸어감는 머리칼
밭고랑에 엎드린 주름 깊은 얼굴이
바랜 꽃다발 받아놓고 마냥 희미해지는
봉분 한 채 닮아간다
(그림 : 김영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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