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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발랭이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일흔 중반 넘어서면서 망녕드셨습니다.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 집사람 못 봤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 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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