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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하나
울 엄니는 열아홉 봄날 아침에 먼 길을 오셨답니다
그날 아버지네 마을의 햇볕들은 참으로 따뜻이 눈에 부셨고
마당가 꽃잎 틔운 살구꽃 그늘
그 아래 소년처럼 웃고 서 계셨던
아버지의 처음 모습을
울 엄니는 지금도 총총 기억하고 계신답니다
달뜬 울 엄니의 귀언저리에
홍시빛 부끄러움의 찐한 물이 들고
물든 그 가슴을 열어 난생 처음인 아버지를 맞던
첫날밤, 뒤채이며 새운 이른 새벽참엔
암도 모를 눈물도 한줄금 떨궜더랍니다
그렇게 하여 울 엄니는
그 집의 감나무 가지 하나 이쪽에서부터
저쪽의 살구나무 가지 하나 그 거리만큼
넉넉한 빨랫줄을 한 줄 내걸었더랍니다
빈 빨랫줄 위로 울 엄니의 평생의 날들이
물기 많은 빨래가 되어 지나갔는데
저 먹을 것 없었던 날들도 가고
저 깜깜밤중이었던 날들도 가고
아! 그랬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구속의 마음으로
당신이 매단 사랑에의 끈, 한생애의 매듭이었더랍니다
어쩌다 우리들 귀향 때면 울 엄니는 아직도
삭은 빨랫대 위에
지금은 당신 자신이 물기 빠진 빨래가 되어
허옇게 나부끼고 계신답니다
(그림 : 류건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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