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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 그 꽃밭 속시(詩)/정윤천 2015. 6. 11. 11:18
이른 저녁 푸른 바람 속 그 자리였던가요
우물 앞 평상 위에 동그랗게 피었던가요
단내음 물씬했던 속살 한입씩 베어물면
입술들은 다투어서 꽃술로 붉었던가요
때맞추어 지붕 위로 달꽃 덩달아 환해오면
싸리울 담장 가득 별꽃들도 뒤질세라 두세거렸던가요
그 꽃밭 속, 오물고물 이빨 없는 할미꽃 한 송이
희끗해진 울 아부지 주름꽃 또 한 송이
귀밑머리가 서늘해진 울엄니 그늘꽃의
꽃그늘 아래
누이들 사춘의 분홍물 가슴 위로
연한 수박향의 목덜미 근처 눈길 가닿고 나면
그 꽃밭 속
내 이름도 한 송이 꽃이름이고 싶었던가요
먼 길 휘돌아 날고픈 큼직한 날개의 꽃잎 한 장
가슴엔 듯 품었던가요
그 꽃밭 속, 우물가 평상 위로
한 저녁의 식구들 동그랗게 둘러 앉아
영락없는 제 모습만큼씩 오종종 맺혀 있던 거......
꽃잎들은, 바람결에 제 향기로 일렁였던가요
꽃잎들은, 서로에게 동그랗게 벙글어도 주었던가요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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