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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 일요일(맑음)시(詩)/정윤천 2015. 6. 10. 11:50
오늘 엄니가 산밭일 가신 할매한테 새참 심부름 갔다와야 헌다고,
아침부텀 미리 닦달 같은 다짐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공회당 뒷골목으로 딱지 치러 갔다가, 하필이면 빵삼이나 똥필이 같은 자식들한테 왕창 잃어버리고,
열불은 나고, 앞뒤 모르고 해름 참까지 거기서 뒹굴다가, 할매는 기어코 새참도 놓치고,
나는 저녁이 다 늦어 집에 와서 회초리 일곱 대나 맞았다.
본래는 열 대 친다 그랬는데, 그나마 중간에서 할매가 뜯어말겨 세 대는 이익을 보았다.
이담부텀 절대로 공회당 뒷골목으로 딱지 치러 가지 않아야겠다. (끝)
일기장 검사받는 날 하루 앞두고 '일요일(맑음)'까지 감쪽같이 짜 맞추어 놓기는 했던 것인데,
그러고도 나는 공회당 뒷골목으로 딱지 치러 2백 번도 더 넘게 갔다 왔을 것인데,
회초리도 아마 천 대쯤은 맞았을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른이 되고 난 뒤로 나는 나에게,
회초리 한 대도 엥겨주지 않고 그 공회당 뒷골목에 천 번도 넘게 다녀온 것만 같아져서,
이제부터라도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끝)
(그림 : 박국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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