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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봉 - 만점 남편
    시(詩)/이은봉 2015. 6. 5. 23:39

     

     

    안 취하려 안 취하려 하다가
    사람들 너무 좋아
    그만 고주망태기로 돌아와 누운 밤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다
    당신, 이럴 줄 몰랐어요
    정말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이렇게 한심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저 혼자 실컷 왜장 치다가
    저 혼자 실컷 핏대 올리다가
    저 혼자 실컷 신경질 내다가
    이것만 지키면 만점 남편이라며
    아내는 순식간에 몇 항목 종이에 쓴다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 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
    - 이, 술 마시지 말고 빨리 귀가할 것
    - 삼, 제 물건은 제 자리에 - 책, 담배, 양말 등
    - 사, 하루 삼십 분 가족들과 대화할 것
    - 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목욕할 것
    하고, 목청 높여 읽다 말고
    아이고, 답답한 이 남편네야
    아이고, 폭폭한 이 서방네야
    아이고, 철없는 이 신랑님아
    하며 내 갈비뼈와 엉덩이
    마구 꼬집는다 주먹 꼬나쥐고
    팍팍 쳐댄다 아이고, 사람 살려요.

    (그림 : 황영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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